♠ 벗님공간 ♠

영우와 두레박

늘사랑 2009. 6. 6. 04:55


 


 

  어느 곳에 바라문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  넓은 들의 한 가운데에 우물을 팠다.

  목동이며, 풀 베는 사람이며, 나그네들이 이 우물에 와서 물을  마시고, 몸을 씻으며 우물을 판 사람의 덕을 치하했다.


  어느 날 해질 무렵 한 떼의 여우가 이 샘에 와서 우물곁 땅에 흘린 물을 마시고 목을 적셨다. 그러나 여우의 우두머리는 땅에 흘린 물을 마시지  않았다. 그는 우물 옆에 놓여 있는 두레박에  머리를 처넣고 그 안의  남은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고  난 뒤 그는 두레박 안에 얼굴을 처넣은 채  땅에다 부딪혀서 두레박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다른 여우들이 이를  보고 나무랐다.

  "나무 잎사귀도 경우에 따라서는 귀중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 두레박은 길가는 사람에게 얼마만큼 귀중한지 모른다. 어찌 그와 같은 일을 하느냐?"

  "참 재미있었다. 사람이 곤란을 받던 말던 내 알 바 아니다."


  여우 두목은 이같이 말하고 다른 여우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두레박이 깨진 것을 바라문에게 알렸다. 그는 새로 두레박을 마련해서 우물에 놓았다. 그러나 여우 두목이 다시 와서 전과 같이 깨뜨려 버렸다. 이와 같이 열네개나 되는 두레박이 계속 모두 깨뜨려졌다. 다른 여우가 아무리 두목을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너무나 자주 두레박이 부서지자 바라문은

   "누가 내가 판 우물에 원한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잘 보아두자"  라고 말하고 다시 새 두레박을 우물 옆에 놓고 나무 그늘에 숨어서 보았다. 낮에 많은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을 마셨으나 누구 하나 두레박을 깨지는 않았다.


  마침내 해가 질 무렵 여우 한 떼가 나타나서 땅위에 흘린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중 두목으로 보이는 여우가 두레박에 얼굴을 처넣고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물을 다 마시고 난 뒤에 두레박을 땅에다 부딪쳐 깨뜨려 버렸다.

  "이 여우가 지금까지 장난을 했구나. 이 우물에 무슨 원한이 있는 것인가."

  바라문은 이같이 생각하고 곧 집으로 가서 견고한 나무로, 여우가 얼굴을

넣으면 빠질 수 없도록 튼튼한 두레박을 만들어다가 우물 옆에 놓아두었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들고 전날과 같이 나무 그늘에 숨어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여우 떼들이  또 나타나서 물을 마셨다. 두목 여우는 역시 전과 같이 머리를 두레박에 파묻고 물을 마시고 두레박에 얼굴을 넣은 채 땅위에 힘껏

부딪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레박이 깨지기는커녕 두레박 안의 머리가 빠지질 않았다. 두레박을 땅위에 부딪칠수록 머리는 깊이 박히어서 이제는 머리를 뽑을 수도 없고 두레박을 깨뜨릴 수도 없었다. 놀래서 허덕이는 여우를 바라문은 지팡이로 때려 잡았다. 이때 여우 떼들은 멀리서 이 모습을 보

고 놀려 댔다.

  "고집을 부리고 친구의 말도 안 들어 두레박을 쓴 채 맞아죽은 바보여우"

  이 여우는 목마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만든 우물이나 두레박에 자기도 도움을  받으면서, 재미로 두레박을 깨다가  급기야는 자기 목숨마저  앓게 된 것이다.